안녕하세요, 오공입니다.
지난 글에서 공언한대로, 지난 6월 여름 어느날 산책하면서 작성한 블록체인 단편소설을 소개합니다.
읽기전에 주지할 점은, 작성 당시만 해도 페이스북의 리브라(Libra)는 물론이고, 중국의 DCEP 등에 대한 움직임이 크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창작소설을 공유하게 된 계기도 더 썩혔다간 더이상 제 창작소설이 '소설'이 아닌 현실'이 될것같아서 입니다.
(법적 고지 : 본 게시글은, 본인 판단하에 내용을 추가, 편집 등 작성되었기에 본인의 허락없이 복사, 배포, 편집 등을 할 수 없습니다.)
"으으음,,,"
죠셉은 괴로움에 신음하며 힘겹게 잠에서 깨어났다. 단순 숙취때문일까 아님 한때 잘 나갔던 시절이 떠오른걸까. 여튼 지금은 주체없이 술을 마신 어제의 자신이 야속하기만 할뿐이다.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보니 숙취때문에 괴로운게 아니란걸 증명하는 듯 과거 자신의 특종 기사가 방바닥에 누워 그를 반겼다.
「사토시들의 연쇄살인범, 사토시 나카모토」
냉수를 벌컥 마시고나니 어젯밤 기억이 군데군데 찟긴 필름처럼 날듯말듯한다.
"사토시..."
이미 꽤 지난 일이라 대중들에게 잊혀졌지만 돌이켜보니 죠셉은 차라리 그 스캔들이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2009년 초 비트코인을 출시한 사토시는 세상에 새로운 화폐수단과 금융체제의 씨앗을 심고 도중에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본 이들은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응용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비트코인은 그 가치를 더했다. 그 덕분에 비트코인은 어느 순간부터 기존의 주요 금융권도 무시하지 못하는 영향력을 뽐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어느 순간부터 그런 자들이 쥐도새도 모르게 살해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만 해도 열혈 청년이었던 죠셉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광팬인지라, 개인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상당한 흥미가 생겼고 기자로서도 뭔가 큰 일을 낼수 있을것만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 촉이 정말 현실이 되었다.
'띵똥~ 띵똥~'
"선배, 집에 계세요?"
어제 술 상대였던 후배 헨리가 초인종을 누르며 불러댔다.
"선배, 안에 있어요? 혹시 나쁜 생각 한거 아니죠??
'쾅, 쾅, 쾅'
헨리는 답답한듯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문 부서진다. 나간다 나가"
죠셉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문을 열어줬다.
"아, 선배~ 전화도 안 받고 뭐하고 있있어요?"
"뭐했을것 같냐"
"응? 지금까지 잔 거에요? 난 또,,, 뭔일 생긴지 알았네"
헨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선배가 종종 우울해 했기 때문에 걱정되는 마음에 아침부터 달려왔다. 그런데 고마워하기는 커녕 귀찮아 하다니, 이젠 익숙해질만도 한데 여전히 섭섭하다.
집안으로 들어가던 헨리는 방바닥에 있는 기사를 봤고, 왠지 모르게 갑자기 선배가 짠해졌다.
"선배, 집에만 있으면 우울하고 또 뭐 좀 먹을겸 밖에 나가게요"
"..."
"아, 어서요~"
헨리가 집밖으로 끌어내려하자 죠셉은 못 이기는 척 모자를 챙겨 현관문을 나섰다.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해 보이는 하루지만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있어, 전세계는 새로운 경제금융체제로 변혁의 시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2009년 비트코인의 등장은 기존에 존재하던 달러, 유로, 엔 등의 신용화폐나 법정화폐의 위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주요 국가들의 정부와 중앙은행들, 심지어 대기업들까지 비트코인의 성장세를 지켜면서도 그것을 벤치마킹하여 새로운 금융시대에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게 어느정도 준비가 되자,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의 최대 거품이 꺼지길만을 기다렸으며 실제로 거품이 빠지도록 비밀리에 개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의 시총과 시세가 끝도없이 빠지면서 주요 국가들은 그간 숨겨온 발톱을 드러냈고, 역대 최대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비트코인은 여러 이유들이 엉키면서 서서히 '영광의 하산'을 하게된다. 그 과정에서 토큰패권주의에 가장 먼저 치고들어온 국가는 다름아닌 바로 중국이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한 죠셉과 헨리는 자주 가는 식당에 늘 지정석처럼 앉는 구석자리에 자리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국이 참 영약했던것 같아요"
헨리는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면서 뭔가 생각난듯 내뱉었다.
"뭐가...?"
죠셉은 관심없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며 답했다.
"아니, 국가차원에서 암호화폐를 그렇게 단속하던 중국이 작업증명방식(Proof of Work) 기반으로 국가토큰을 발행한 건 지금 봐도 놀라우면서도 중국다운것 같아요. 그들입장에서는, 일당체제국가이기에 가장 직관적이고 간단명료한 증명방식을 선호했을거고, 또 에너지자원이 풍부했기에 기반한 컴퓨팅파워 주도권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을것이고요. 재미있는건 그 토큰이름이 'ONE'인거에요. 그들의 슬로건인 '하나의 중국' 노골적으로 표현한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작업증명방식은 상시 포크가 가능하다는 점이 역설적이란 말이에요"
"듣고 보니 그렇네"
죠셉은 살짝 관심이 생기는 듯 주문한 식사를 맞이하며 시크하게 말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발행량이 15억개라는 거에요. 비트코인이 역대 전고점을 향한 상승랠리가 이어질 때, 중국이 자국 인구에 맞게 발행량을 정한것 같은데, 이게 인민 한명당 토큰 1개꼴인거 보면서 중국 사회주의 특색이 묻어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볼수도 있지. 아닌게 아니라 과거 덩샤오핑이 강조한 중국만의 사회주의에는 공산당 주체하에 모두가 부유해지는 것이 포함되어있는데, 겉으로는 인민에게 1개꼴로 돌아갈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면서도, 속으로는 수치적인 마케팅을 지렛대로 해시파워를 통제하면서 현실처럼 기득권들이 다 해먹겠다는 거 아니겠어. 중국이 과거부터 아닌척 하면서 블록체인 연구에 목멘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
죠셉은 이제야 정신이 들어 헨리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오~ 그럴듯한데요. 선배 아직 살아있는데요. 아무튼, 미국을 넘는 세계패권국가로 부상하려던 중국이 겉으로는 과거 무역분쟁때 미국에 치이고 내전에 흔들려 국가적 위기를 수습하면서도 뒤에서는 얼마나 이를 갈고있었을까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면서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해요"
"그런의미에서 보면 미국 역시 미국다운 방식으로 토큰경제를 받아들였고 그걸 토큰경제민주주의로 승화했다고 볼수있지"
"그러니깐요. 미국엔 50개 주가 있고, 각 주당 검증인을 두게해서 총 50개의 검증인을 두었죠. 특히나 위임지분증명방식(DPoS)기반으로 국가토큰을 발행한건 신의 한수였던것 같아요. 그렇게하면 각 주마다 고유의 커뮤니티를 유지하면서도 각 검증인들 간 선의의 경제를 통해서 각각의 지역브랜드의 위치도 가늠할수 있고요. 대박인건, 미국 대선을 포함한 각종 선거때도 미국 특유의 선거인단 투표를 위임지분증명방식의 검증인체제로 그대로 반영하여 투표를 하게 하는 것도 신선했고요"
"그게 다 처음에는 선거자금조달 편의성때문이지 않을까. 자기 주머니에서 정치후원금 내는 것보다 암호화폐를 내는게 편하고, 더욱이 그 당시에는 코인시장이 지속 상승장이어서 토큰모금이 현금모금보다 더욱 수월한 점도 있었지. 그걸 제대로 간파한 눈치백단 정치인들이 타이밍을 잘 잡았고, 심지어 그렇게 선출된 대통령이 암호화폐에 우호적이던 의회와 맞장구치면서 아예 경제시스템을 토큰화시킨거고. 그뿐만 아니라, 거기에 달러를 찍어내던 미연방준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도 기존의 권한을 유지한다는 조건하에 행정부와 의회랑 결탁했을거고. 결국엔 힘없는 서민들만 혁신이 만능인것처럼 좋아하다가 손가락만 빨게된거 아니겠어"
"흠,,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그래도 서민들은 기본소득제(Basic income)가 도입되었다고 좋아하던데요. 어느 순간부터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면서 우리의 일자리부터 위협당했죠. 기존 산업혁명때는 새로운 기술로 인해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거라 예상했지만, 그 선례가 완전 빗나가버렸죠. 그런 분위기에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과거 기본소득제의 문제인 세수부족과 배분의 어려움을 새 토큰 발행으로 해소해버렸죠. 그 덕분에 꽁꽁 숨겨놨던 지하경제 속 현금이 줄어들기도 했죠. 여러모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것 같아요"
"그러고보면, 그 덕분에 사람들이 기본소득에 충분히 만족하고 진정 원하는 활동을 하는 성숙한 사회가 존재할수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국가차원에서 기본소득으로 쓰이는 토큰의 활용처가 빠른시일내 많이 구축되었지. 핵심은 기본소득과 토큰 둘다 보유가 아닌 활용에 중점을 둔다는 거였는데, 현재까진 성공적인것 같아"
"역시 선배에요. 저번에도 같은 얘기한것같은데, 시의적절한 기술과 정책이었던 것 같아요"
죠셉은 칭찬같은 말에 으쓱하긴 커녕 오히려 불쾌하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식사를 마쳤다. 예전같았으면 그저 아무렇지 않게 들었을 말이겠지만 지금은 한물간 사람에게 칭찬은 사치이기에 마냥 받아줄수 없었다.
"사토시 스캔들,,,"
죠셉은 한숨쉬듯이 작게 내뱉었다.
사토시 스캔들은 호주의 유명한 개발자를 시작으로,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둘씩 살해를 당한 연쇄살인사건과 관련되어있다. 살인 방식이 잔인하기도 했지만 살인현장이 미국, 중국, 유럽 등 한곳에 모여있지 않고 분산되어있었다. 이에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왠지모르게 열광한 반면, 국가의 수사기관은 연속된 살인에 무능함이 드러내자, 곧바로 전세계적인 공조를 벌여 추적을 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기에 죠셉은 특유의 동물적인 감각과 집요한 조사 덕분에 살인범을 사토시로 지목하는 쾌거를 이뤘고, 그때 낸 특종기사가 아침에 방바닥에 나뒹군 기사였다.
그 특종 덕분에 죠셉은 일약 스타 언론인이 됨은 물론, 개인토큰을 등록하자마자 개인토큰환율이 급등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건 1인 미디어사까지 설립하여 유명언론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공조한 수사기관들은 자신들이 스캔들의 들러리로 전락해버리자, 수사와 관련된 국가들의 정부와 당국은 언론플레이를 통해 오히려 죠셉을 깍아내렸고 심지러 그를 연쇄살인범 누명을 씌웠다. 죠셉이 인기와 핍박에 천국과 지옥을 한창 오갈때쯤, 합동수사 당국은 연쇄살인범으로 추정되는 자의 위치를 파악하여 포위망을 좁혀갔고, 결국 용의자는 비트코인이 100만개 담긴 사토시 지갑의 프라이빗키를 적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그렇게 세기의 스캔들은 일단락 되었고 죠셉은 누명이 벗겨짐과 동시에 한동안 이슈메이커로 남았다. 비트코인은 그 스캔들 이후로 역대 가장 높은 시세를 향한 마지막 상승랠리를 기록하였다.
"그때부터였지, 비트코인이 마지막 힘을 다한게,,,"
"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아냐, 별거 아니다. 다 먹었으면 나가자"
죠셉은 답답한듯 후배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연이틀 후배와 시간을 지낸뒤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죠셉은 자주 가는 바에 들러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에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해 들으며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멍 때리는 것도 잠시, 다시 잡념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놈의 자존심때문에 자신이 씹다뱉은 껌 취급 받는게 죽기보다 싫었다. 더 짜증나는건 죠셉 본인의 개인토큰환율이 야금야금 하락하는 것을 지켜볼수밖에는 현실이다.
개인토큰제도(Individual token sysyem)가 생긴건 오래되지 않았지만, 있는 자들 위주로 수요가 폭발하면서 하나의 글로벌 트렌드가 되었다. 현재는 국가별로 본격적인 토큰경제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금융당국의 심사를 통해 영향력있는 인물들부터 국가토큰과 연동되는 개인토큰을 만들수 있었고 이 개인토큰들은 국가토큰과 실시간 환율대로 가치가 매겨졌다. 국가토큰은 해당 국가의 근로자 보수의 중간값을 기준으로 하기에 환율이 1보다 높으면 중산층 이상을 의미하고 1보다 낮으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당국의 규정을 준수하면, 그 개인토큰을 기반으로 스테이킹, 대출, 배당 등 다양한 비지니스 모델을 구축할수 있다. 그야말로 개개인이 하나의 작은 경제주체가 되었고 영향력이 큰 개인이나 법인들은 하나의 은행이나 금융시스템에 버금가는 시대가 온것이다.
'0.65382139'
죠셉의 스마트 와치 화면에서 그의 개인토큰환율이 깜빡였다. 특종기사로 이름을 날린 이후에는 이보다 10배가 넘었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근히 삶을 버티는 이유는 언젠가는 또다른 대박을 터뜨릴수있다는 실낱같은 희망과 헨리같이 자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 후배인 헨리는, 유명한 사업가가 조직한 탈중앙화 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들이 과거에는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졌다면, 현재는 그 뿐 아니라 각자가 속하는 토큰 커뮤니티로부터 또다른 정체성을 갖게되었다. 참여자들은 같은 커뮤니티라는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국적, 종교 등과는 별개로 사회적 활동을 하기도 하고, 특히 토큰에 기반한 경제적 소비활동도 하고 있다.
죠셉은 갑자기 헨리가 보고싶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자존심을 애써 외면하면서, 오랜만에 칼럼 하나를 작성하기 위해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살짝 취기가 올라와서일까, 왠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명성과 익명성이 낳은 현금으로의 회귀, 우연인가 필연인가」
2009년 초 등장한 비트코인은 '가명성'이라는 가면 덕분에, 거래 참여자가 누구라고 특정지을수 없지만 분산원장을 통해 추적이 가능한 암호화폐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가명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개인정보보호욕구에 부응하면서 '익명성'으로 진화하였고, 결국엔 발달된 전산암호학과 거대한 토큰경제가 결합되어 누구나 갖고싶어했던 스위스계좌가 개개인의 디지털 지갑속까지 들어간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익명거래를 한다해도 기술적 결함이 발생되거나 비(非) 익명성 코인으로 전환되는 순간, 그 익명성이 해제되면서 거래내역이 노출될 수 있다.
한편, 거래 추적 불가능은 없을것이라는 정부는 철저한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여 토큰세상을 여는 마스터키를 확보했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그 판단과는 반대로 토큰경제가 전 세대의 일상속에 상당히 스며들때쯤, 익명성기술을 탑재한 토큰체제 큰 문제없이 토큰경제의 효용성을 세상에 전파하였고, 장기간 연구와 모니터링을 해온 주요 국가들은 통제불가능한 익명성과 토큰경제체제를 그대로 놔뒀다가는 기존 기득권에 득보단 독이 될거라고 결론내리고 견제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사활을 건 견제는 의외의 파장을 일으키는데, 바로 구세대와 신세대간 갈등이다.
아직까지 현금이 익숙한 구세대는 정부에 대한 반발과 익숙함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발로 현금으로의 회귀를 시작했고, 태어날때부터 토큰이 곧 일상화폐라고 인식한 신세대는 그런 구세대를 조롱하며 정부가 견제할수록 토큰을 더욱 사용하였다. 그런데 그때쯤 우연찮게 익명성 프로토콜의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하고 비슷한 시기에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의 최대 거품이 빠지자 일대 혼란이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안전하고 투명하면서도 개인정보를 보호할수 있으리다 여겼던 '가명성'과 '익명성'에 기인한 탈중앙화 토큰에 대한 신뢰와 지지에 균열이 생겼고, 그나마 브랜드가치가 높았던 주요 암호화폐들은 살아남아 무정부주의자들의 자산보존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주요 국가들은 기다렸다는듯이 국가토큰경제시스템을 속속 도입하여 혼란한 경제에 믿을수 있는 자산은 국가토큰뿐이라며 선전과 홍보에 열을 올렸고, 일상속 토큰은 물론 익명성 토큰 역시 정부주도로 기술개발되고 있는 현재에 이르렀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일어난 의심스러운 사건과 사고들이 생긴 것은 단순 우연인걸까 아니면 언젠간 일어났을 필연적인 걸까.
간만에 칼럼작성이 힘들었는지 아니면 취기가 확 올랐는지 집중력이 흐트려졌고, 탈고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계산을 마치고 바를 나섰다. 금요일 밤인지 밤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죠셉은 인파속을 지나 집으로 성큼성큼 향했다. 이제는 인파 속 사람들 중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당시의 본인과 사람들을 기억한다. 사토시 스캔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죠셉에게 더 자극적이고 음모론적인 가십성 기사를 기대하였고, 그는 자신의 뜻대로 미디어활동을 하는 이상과는 달리 그들에게 잊혀지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관심끌기용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그게 잘못된 판단이었을까. 암호화폐의 거품이 빠지고 나자 그의 전성기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수많은 토큰들처럼 그 역시 지속가능한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 탓에 가치가 떨어진것이다. 그래도 오늘 밤은 간만에 글을 작성해서인지 옛날로 돌아간것 같은 기분과 함께 왠지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의 이런 기분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듯, 길가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또다시 상념에 잠긴다.
현재의 비트코인의 상징성과 파급력이 예전과 비교할때 상당히 몰락했다고 하지만, 어찌보면 언젠간 도래할 '영광의 하산'을 한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비트코인이 보여줄수 있는 가치와 가능성을 보여줄만큼 보여준 덕분에, 다른 프로젝트들이 시행착오를 덜 겪으며 더 빠른 속도로 빛을 발할수 있었고 그 모든게 큰 산업으로 발전하여 토큰의 대중적 수용(Mass adoption)이 일어나면서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영광의 하산을 했냐'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에 있지 않고 여러가지 이유가 뒤섞여 특정 시점에 터졌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우선, 분명 존재했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토시가 알고보니 잔인한 인물로 밝혀진 '사토시 스캔들'도 이유가 되었다. 혹자는 자살한 살인범 곁에 남겨진 사토시 지갑의 프라이빗키가 적힌 유서는 정부나 당국이 조작한 것이고, 진짜 범인은 분명 기득권층의 꼭두각시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분명한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기속에 사토시는 잔인한 존재로 각인되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토큰의 양면성' 때문이다. 인터넷을 예를 들면, 인터넷은 과거에 즉각적 뉴스 제공하고 빅데이터를 탄생케한 혁신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묻혔을 각종 사건, 사고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빠르게 퍼지면서, 결국 세상은 폭력이 만연하므로 오직 힘으로 이 혼란을 잠재워야 한다는 정치적 선전도구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인터넷 이상으로 파급력 있고 활용성이 좋은 블록체인은 기존의 인터넷과 같이 거대한 분산 네트워크이자 즉각적인 디지털 커뮤니티를 구축하기도 했지만 토큰이라는 특수한 경제 메커니즘 역시 지녔다. 다만, 이 특성때문에 인간의 탐욕과 군중심리와 결합되어 전에 없던 새로운 전체주의(New Totalitarianism)가 촉발되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비트코인의 추종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이 서로 동질감을 느끼면서 그들만의 정신적 결속을 다졌고 비트코인을 포함한 토큰들을 그들의 활동의 경제적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적을 초월한 전체주의 커뮤니티는 그림자 거버넌스의 교묘한 선동에 자극을 받아, 열혈 추종자 위주로 곳곳에서 유혈사태와 테러를 일으키면서 결국 그들 스스로 사토시 정신의 한계를 그어버렸다. 그러자 사토시는 역시 살인자 우두머리라는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만 짙어졌다.
그런데 영광의 하산의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거품'이 빠진것이다. 사토시가 끝내 자살한 연쇄살인범이라고 드러나면서, 비트코인은 한동안 사상 최고의 상승랠리를 기록한 뒤, ASIC채굴집단 등 암호화폐 기득권들간의 끝 모르는 정치적 다툼에 의한 네트워크 보안 취약, 비트코인을 눈엣가시로 본 기득권층의 개입 등으로 역대 최고 거품을 인류사에 선사하였다.
죠셉은 주마등처럼 과거 자신이 취재해온 비트코인의 흥망성쇠를 생각하니 정신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졌고, 급 피곤해졌다. 한때 달러는 물론 금마저 대체할거라는 기대를 품게했던 비트코인의 역사가 왠지 자신의 역사와 오버래핑되는 것같아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집 앞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열때, 문 아래 틈으로 뭔가가 보였다. 서류봉투 하나가 문 아래 틈에 끼워져 있는 것을 보였고 고개를 서서히 숙이며 그 정체가 뭔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혹시 헨리가 뭘 놓고 갔나 아니면 구독하지도 않은 신문을 찔러놨나라는 생각을 하며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봉투 모서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문구 몇개가 눈에 띄였다. '최고급 기밀'이라는 글자와 함께 그 바로 아래에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L.U.C.Y'
※ 출처 : www.satoshicode.com
* 추천과 댓글 등 피드백 환영합니다
시대는 미래를 기점으로 잡으신거 같고...가상의 인물들의 대화속에 미래 암호화폐들의 이야기가 숨어있네요...
미국과 중국의 또다른 경제주도권싸움도 ...조금 있는것 같고....
`언젠가는 또다른 대박을 터뜨릴수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말이 가슴에 팍 꼿히네요....^^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