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은행 1위에 카카오뱅크가 꼽혔습니다. 최근 한 취업플랫폼이 6월에 조사한 설문 결과입니다. 대학생들이 카카오뱅크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장, 개발 가능성과 비전’(38.7%)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기업풍토’(10.3%), 세 번째 이유는 ‘장래 사업성 유망’(9.1%)였습니다.
이 설문 조사 결과를 쉽게 넘길 수 없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은행 임원들을 만나보면 이러한 고충을 털어놓습니다. “내가 은행에서 근무하는데, 정작 자녀들은 내가 다니는 은행의 모바일 앱을 사용하지 않는다. 학자금 대출은 제공받으면서, 모바일 금융 서비스는 경쟁사인 카카오 뱅크나 토스를 사용하고 있다.”
과거 은행이 선망의 직장으로 꼽히던 대표적인 이유는 ‘안정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안정성이 오히려 결정적인 단점이 되고 있습니다. 금융 환경이 천천히 변할 때는 전통은행의 안정성이 장점으로 다가오지만, 금융 환경이 역동적으로 변하면 전통은행의 안정성이 오히려 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집안에 불이 나면 안정적으로 불을 끌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불을 꺼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은행들의 자구책과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전통은행들은 카카오뱅크가 출시되던 2017년도부터 이른바 ‘카뱅 효과’에 놀라 부랴부랴 모바일 뱅킹 앱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디지털 전환을 서둘렀습니다. 안타까운 부분은 그러한 노력에도, 2019년 5월에 카카오뱅크가 모바일 뱅킹 시장에서 모든 전통은행들을 제치고 사용자ㆍ설치자ㆍ실행수 등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즉 디지털 혁신을 따라하지만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형세입니다.
각 은행장들의 신년사와 취임사에는 마치 서로 합의한 것처럼 디지털 전환, 디지털 퍼스트라는 구호가 등장합니다. 모두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다면 그것은 차별화된 전략과 비전이 될 수 없습니다. 전통은행의 장수들은 디지털 비전을 외치고 있지만, 막상 현장의 젊은 은행 직원들을 만나 보면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임원들은 한결같이 디지털 전쟁을 외치는데 정작 그들은 정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기업이 디지털 세대의 마음의 선택에서 멀어지면, 시간이 갈수록 기업의 경쟁력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흥망성쇠를 확인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해당 분야 인재들의 이동을 확인해보는 것입니다. 카카오뱅크 설립 초기에 KB국민은행에서 파견했던 인력들은 파견근무기간이 끝나자 전원 카카오뱅크에 잔류하며 본사로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반면 케이뱅크 설립 초기에 우리은행에서 파견했던 인력들은 파견근무 기간이 끝나자 전원 본사로 복귀했습니다. 즉 새로운 사업모델과 인터넷은행 라이선스가 있다고 해서 인재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갑작스럽게 찾아 온 디지털 대면 시대는 전통은행 경영자들의 머리를 더욱 아프게 합니다. 전통은행은 아무리 지점 수를 줄여도 오프라인 지점을 없앨 수는 없고 매일 방역 강화를 하기에도 바쁩니다. 그런데 카카오뱅크는 오프라인 지점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본사마저 전통 금융권과는 거리가 먼 판교에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네이버 통장이 곧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카카오뱅크ㆍ토스뱅크ㆍ네이버통장의 3각 구도가 형성되면 앞으로 전통은행을 향한 디지털 공세는 더욱 세질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은행들은 어떻게 될까요? 결국, 기업 외부에서는 디지털 세대가 전통은행을 멀리하고, 기업 내부에서는 젊은 인재들이 기업의 비전을 비관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실행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전통은행의 리더들께서는 더 이상 디지털의 비전과 희망을 외치지 마시고, 디지털 전쟁에서 승산이 없음을 고백해 보는 것입니다. 화려한 파워포인트에 담긴 거대한 숫자를 외칠 것이 아니라 ‘이대로는 자신이 없다, 안 될 것 같다’고 용기를 내어 고백하는 것입니다. 슬라보예 지젝이 저술한 『용기의 정치학』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지금 현실 세계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비관적으로 인정하는 것 그 자체다. 진정한 용기는 대안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안에서 얻는 꿈과 희망은 곤경 속에서 치열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집착이며, 이론적인 비겁함의 신호다. 진정한 용기는 터널 끝에서 보이는 빛이 어쩌면 반대 방향에서 다가오는 기차의 헤드라이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 진정 미래를 바꾸고자 한다면 더 늦기 전에 컨설팅을 버리고 내부 구성원의 디지털 교육에 조 단위의 대규모 예산을 투자할 고민을 해 보십시오. 사람인에 따르면 농협은행의 2020년 직원수가 1만6875명입니다. 연간 1조원의 교육 예산을 내부 구성원들에게 투자한다면 직원 1인당 평균 5900만원을 투자하는 셈이 됩니다. 큰 금액처럼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참고로 농협은행 직원의 평균연봉이 6290만원이고, 2019년 순이익이 1조5000억원 대입니다. 진정으로 기업의 미래 10년을 바꿀 수 있다면, 1년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이러한 의사결정이 경영진과 이사회에서 통과되는지 한 번 도전해 보십시오.
세 번째, 내부 교육에서 과감한 승부수를 걸 수 없다면, 전통은행을 위협하고 있는 네이버ㆍ카카오ㆍ삼성전자ㆍ토스 등의 경쟁사로부터 우수 인재를 대규모로 빼 올 수 있는지 채용전쟁을 시작해 보십시오. 아마 디지털 우수 인재들이 쉽게 넘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신흥 디지털 플랫폼기업들은 전통은행의 우수 인력들을 채용해가고 있습니다.
결국, 내부에서 승부를 걸 수 없고, 외부에서도 승부를 걸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 단계로 돌아가 승산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내부 구성원들에게 이 상태로는 희망이 없다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용기가 오히려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위대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용감한 고백을 미루고 회피하면 결국 전통은행에서 근무하는 부모의 자녀가 부모의 기업에서 출시한 디지털 서비스를 점점 멀리하는 대세를 되돌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전통은행 내부에 근무하는 젊은 세대들이 디지털 전쟁에서 싸우자고 외치는 임원들을 향해 정작 그들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꼬집는 악순환을 깨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신흥 디지털 플랫폼들의 금융 시장 점유율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김문수 aSSIST 경영대학원 부총장 및 크립토MBA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