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상품들의 가격의 상승을 의미합니다.
벌어들이는 돈은 일정한데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면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합니다.
때때로 일을 하지 않던 가족 구성원들까지 일 을해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을 싫어하죠. 아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미워하고 증오하고 혐오합니다.
지난 글에서는 인플레이션에 관해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은 그 반대 되는 개념인 디플레이션 현상을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현상 이라고 한 이유는 인플레이션은 대부분 경제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치는 중앙은행과 국가기관이 중심이 되어 인위적으로 만들어 지는 경우가 많지만 디플레이션은 대부분 매우 않 좋은 경제상황의 결과도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는 곳과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아르헨티나는 매우 재미있는(?) 사회인데 경제상황이 정말짧은 주기로 급변하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죠. 이곳은 인플레이션에만 시달린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을 디플레이션에도 시달렸습니다.
디플레이션은 상품들의 가격이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물론 생산성 증가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절감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디플레이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전체 국가의 전반적인 소비자 물가 지수가 떨어지고 상품들의 가격은 떨어지지만 떨어지는 이유는 매우 다릅니다. 너무도 소비가 침체 되어 상인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제살을 깎아 먹듯 가격을 내리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죠.
가격이 떨어지면 돈의 가치가 올라가니까 좋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실상을 그렇게 유쾌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90년도 초반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의 물가를 안정시킨 경제정책이 있었는데 일명 “달러 태환정책” 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아르헨티나가 몇번의 화폐개혁을 통해 페소->신페소->아우스트랄 까지 3번이나 사용화폐가 바뀌는 동안 인플레이션은 더 가속되기만 했지 물가가 안정되질 않았습니다. ( 저번글에 좀더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
결국 아우스트랄 마져 버티지 못하고 또다시 화폐 개혁을 하여 페소를 만드는데 이번에는 달러와 비슷한 크기 비슷한 단위로써 마치 아르헨티나판 달러를 발행한 것과 같았죠. 이건 이름만 페소지 유사 달러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대놓고 배꼈습니다. 물론 디자인은 다르긴 했지만 그동안 전통적인 페소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죠. 일반적으로 1, 5, 10 단위 로 동전이나 지폐가 만들어지는데 달러는 1, 2, 25, 10 이렇게 좀 다른 단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작은 디테일까지 달러의 단위를 그대로 재현하고 모든 페소는 달러와 언제나 1 대1로 교환이 된다고 정부가 보장을 하며 큰소리 쳤습니다.
그리고 모든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에 대하여 자국이 아닌 미국법에 의해 보호 받는다고 까지 발표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채권을 발행하게 됩니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법이 보호한다는 부분에 매우 크게 환호하며 페소를 달러화의 동생쯤으로 생각하며 받아 들이기 시작합니다.
은행에서도 달러 계좌를 만들 수 있었고 모든 제품의 가격표기를 달러로 할 수도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간접적인 방법이지만 경제의 달러화를 선언한 것이죠. 달러도 통용화폐로 받아들이고 월세, 부동산, 상품 모든 상거래가 달러로도 가능하도록 법이 제정되었죠.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달러와 페소의 태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에 신뢰가 돌아오자 돈은 다시 은행으로 향했고 은행들은 사람들의 예금을 다시 대출해주며 금융권도 다시 활력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타국의 화폐와 환율을 묶어 두게 되면 발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달러나 유로를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현상 이죠.
시장 상황에 따른 탄력적인 경제 정책이 매우 제한적이 된다는 것이죠.
( 그리스가 유로를 사용하며 겪은 상황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
달러는 미국의 화폐이고 자국 상황에 따라 금리나 환율이 조정이 됩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자국 상황에 맞추어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미국이 정하는 정책에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생산성 대비 높은 인건비와 고환율로 인한여 외화 유출이 매우 심각하게 발생합니다.
자국과 외환의 환율차이라는 것이 사라진 상황이기 때문에 수입하는 것이 매우 저렴해지고 생산품의 수출은 너무 비싸지는 것이죠. 그래서 국제 무대에서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지탱하기 어려운 경제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초기에는 시민들의 신뢰를 얻고 많은 지하자금이 은행으로 향하여 시장의 신뢰를 얻자 해외에서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을 올려 주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해외 차입금이 많이 유입되었죠. 그런 자금들을 바탕으로 90년도 중반까지 그런대로 경제는 잘 굴러갔습니다.
90년대 후반이 되자 외채상환이 독약으로 다가왔죠. 경제 성장률은 눈에 띄게 낮아졌고 아니 마이너스까지 기록하게 됩니다.
많은 외화유출 ( 수입, 해외관광등.. )로 인하여 시중에는 돈이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동성이 떨어진 시장은 일반적으로 국가에서 화폐 팽창을 통해 유동성을 유지하게 되지만 태환정책으로 인하여 추가 화폐발행은 외환보유고에 묶여 엄격하게 제한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대량 해고->실직->경기하락 으로 이어졌죠. 장사가 안되고 돈이 않 돌아가니 기업들과 상인들은 가격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50% 세일, 상시 60% 할인 등으로 전반적인 상품들의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죠. 이렇게 디스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도 반짝 효과 밖에 낼 수 없는 것이 아무리 가격을 내려도 이미 직업이 없고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비활성화를 기대하긴 어려워집니다.
아르헨티나 현지인 들에게는 거의 처음 접하는 디스플레이 션이었는데 이 기간 또한 초인플레이션 만큼이나 어려운 시기 였던 것입니다.
시장은 매우 경직되고 무엇도 안 팔리는 시기였기 때문이죠.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생필품과 아주 기초적인 식품 종류를 제외하고는 장사가 정말 안되었죠.
불경기가 몇 년간 이어지자 당시 인기를 끌며 탄생한 몇가지 업종이 있었습니다.
기업형 대형 전당포, 마이크로 크레딧( 금융권이 아닌데 매우 소액 500불~ 2000불 정도 대출하여 24개월 할부로 상환 ), 중고 매매상점 같은 불활형 업체들이 성행했습니다.
이때 틈새시장을 개척하여 매우 성공을 한 몇몇 업체들이 당시 신문에 소개 되었는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예전에는 매우 잘살던 도시였기 때문에 매우 희귀하고 고가의 골동품을 많이 구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1920년도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라 던지 2차세계대전 당시 사용하던 축음기, 이태리 장인이 만든 고급 원목가구 등등…
이런 고가의 골동품들을 헐값에 사들여 유럽 및 북미로 매우 비싸게 판매하여 떼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죠.
( 물론 해당 업체들은 경기가 회복 하며 금새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
이런 것을 보면 어떤 상황에도 기회를 찾는 사람들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직장을 잃었고 간신히 직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월급은 낮아졌습니다. 시장은 위축되고 그 작용으로 디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상황은 나아지질 않고 거리에 묻 닫는 가게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지난번 포스팅에 언급하였지만 인플레이션은 돈의 가치가 매일 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있는 대로 모두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장사는 오히려 너무 잘돼서 문제가 되죠. ( 물론 생필품 중심이긴 합니다. )
그러나 디스플레이션을 맞이한 경제는 상품 가격이 계속 낮아지다 결국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상황이 옵니다. 더 이상 스톡에 있는 물건이 판매되질 않고 유지도 안되는 업소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눈물의 점포 정리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사람이 시장에 넘치게 되니 전체 물가지수는 매우 낮아지는 것이죠.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2001년 매우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돈이 말라 버린 국가에선 현금 인출 제한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 뭐 지금 같은 상황이면 대부분의 지출을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동요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아르헨티나 국민의 10% 만 신용카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점의 30% 정도만 신용카드 거래가 가능했죠. 그러다 보니 인출 제한으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
ATM기를 통해 하루 200불 가량밖에 인출하지 못하도록 모든 은행들을 통해 조치를 취했고 불안감을 느낀 시민들은 모두 은행앞에 줄을 서서 매일 같이 ATM의 현금이 동날 때까지 인출 러시가 벌어졌습니다.
달러와 마찬가지 라던 정부는 약속을 깨고 달러화 인출은 금지해 버리게 되고 불안감을 느낀 시민들은 암달러 상으로 달려갔죠. 암달러는 각격이 치솟기 시작해 1달러를 1.8페소까지 지불해야 할정도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대통령궁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집니다. 야당 정치세력은 이런 불만을 이용해 시위대 속에 건달 조직을 이용해 폭력시위로 변질 시켰고 정부의 강력한 진압으로 사망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은행들 앞에 몰려가 유리창을 깨고 ATM기를 파괴하는 등 극심한 혼란이 발생합니다.
급기야 계엄령까지 선포하게 됩니다. 사망사건 이후 시위대는 더욱 불어나고 경찰력으로 진압이 불가능하자 군부에게 지원을 명령하지만 군부는 폭력진압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게 됩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임기 1년 5개월을 남기고 사임을 선언하고 대통령궁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엄청난 혼란의 시기가 있어서 2001년 12월 사임이후 2002년 1월 초까지 약 10일 동안 대통령이 5번 교체 됩니다.
- 선출된 현직 대통령 사임 (Fernando de la Rúa, 2001년 12월 20)
- 상원의장 대통령 임명, 3일 후 사임 (Ramón Puerta, 2001년 12월 20 – 23일)
- 산후한 주지사에게 대통령 임명, 1주일후 사임( Adolfo Rodríguez Saá, 2001년 12월 23 – 30일 )
- 하원의장 대통령 임명, 3일 후 사임 (Eduardo Camaño, 2001년 12월 30일-2002년1월 2일)
-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 출신 하원의원 임명, ( Eduardo Duhalde, 2002년 1월 2일 – 2003년 5월 )
아마 기네스북에도 등제 되어있을 것입니다. 10일 동안 대통령이 5번 바뀐 국가로 말이죠.
이렇게 디플레이션의 결말이 어떤 지 아르헨티나를 통해 보 실수 있었습니다.
초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모두 그리 즐거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화폐의 무한 팽창도 매우 위험하지만 이렇게 특정 규칙에 묶여 있어 국가가 경제상황에 맞게 화폐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비트코인이 국가 화폐를 대체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정해져 있고 그 이상 발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디스플레이션 화폐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속도가 빨라지고 수수료가 저렴해 진다 하여도 전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분량에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가지 상황에 맞는 용도별로 탄생한 여러 알트코인들과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비트코인이 최초의 암호화폐이고 그 상징성이 매우 크지만 비트코인만으로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기에는 매우 부족하게 되는것이죠.
그러나 아직 너무도 초기의 실험적인 암호화폐세계에서 경제적 효과를 미리 예측 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암호화폐들은 일반적인 화폐와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아니 화폐라고 볼수도 없는 새로운 가치 수단이기 때문에 그 정확한 사용 용도와 앞으로의 새로운 가능성이 계속 발굴되고 있는 시점에서는 모든 것이 실험적이고 직접 부딪혀 보기 전에는 알수 없는 것 투성 입니다.
이렇게 미지의 세계로 향하고 있지만 그 수많은 가능성들이 가져올 미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수많은 불합리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 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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