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블록체인의 기준은 무엇일까?
높은 트랜잭션 속도에만 집중하면 블록체인 본연의 목적(탈중앙화)이 퇴색될 우려가 있으니 '예술 점수'에 속하는 탈중앙화 지수도 함께 고려해야 좋은 블록체인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김연아 선수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2014년 소치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피겨스케이팅은 빙판 위에서 여러 가지 동작으로 기술의 정확성과 율동의 아름다움을 겨루는 빙상경기의 한 종목이다. 김연아 선수의 활약으로 한국에서 피겨스케이팅 붐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피겨스케이팅은 어떤 부분을 평가해서 우위를 판가름하는 걸까?
각 종목별로 프로그램당 점프·스핀·스텝 등을 평가하는 기술점수(TES)와 프로그램 구성 점수(PCS)를 합산해 순위를 가리는데, 쉽게 말해서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결정한다. 기술 점수, 예술 점수가 각각 매우 높아도 순위권에 올라갈 수 있지만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술뿐만 아니라 연기, 안무 구성, 음악 해석력 등 예술성 측면에서도 우수해야 한다.
ⓒ언스플래시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기술적인 요소와 예술적인 요소가 두루 충족돼야 좋은 블록체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블록체인 메인넷을 평가하는 기준
블록체인 기술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본인들의 메인넷 기술들을 어필하며 자금을 모집(ICO, Initial Coin Offering)하거나 프로젝트들을 홍보하고 있다.
메인넷은 독립적인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스마트 계약 적용 여부, 신기술(인터체인, 사이드체인 등) 적용 여부, 트랜잭션(거래) 속도 등 다양한 기술적인 측면에서 암호화폐 사용자,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뭘까?
짧은 시간 안에 블록에 많은 데이터를 담을 수 있는 트랜잭션 속도, 그리고 블록체인이 탄생한 배경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인 탈중앙화 정도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TPS: 1초당 처리할 수 있는 트랜잭션 규모
TPS란 Transaction per Second의 약자로, 1초당 처리할 수 있는 트랜잭션의 개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10만 TPS라 함은 1초당 10만 건의 트랜잭션을 처리할 수 있는 속도를 말한다. 여기서 트랜잭션은 한국말로 거래내역이라고도 하며,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업무의 최소 단위를 말한다. 트랜잭션은 물건을 구매한 뒤 돈을 지불하는 일상적인 의미의 거래와는 다르다. 블록체인에서 말하는 트랜잭션은 지갑 간 암호화폐의 이동을 의미하며, 블록체인에 담는 데이터(암호화폐도 사실 다양한 데이터 중 하나다)를 가리키기도 한다.
비트코인은 7 TPS
블록체인은 트랜잭션(거래내역)이 담긴 블록들을 체인처럼 엮어서 데이터를 보관하는데, 블록체인 참여자들의 승인을 거친 트랜잭션만이 블록에 저장된다. 블록은 하나의 거래 장부로, 일정한 시간 간격에 따라 주기적으로 생성된다. 암호화폐의 종류에 따라서 블록의 크기와 생성 주기가 달라지는데, 그 결과로 결제 처리 속도가 결정된다. TPS는 하나의 블록에 저장되는 트랜잭션 개수에 블록 생성 주기를 나눈 값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다양한 암호화폐들의 TPS는 얼마 정도 될까?
비트코인을 예를 들어 TPS 계산 방식을 알아보자. 비트코인의 평균 블록 생성 시간은 10분(600초)이다. 블록 크기는 1메가 바이트(Mbyte)이며 이는 1,048,576바이트(byte)이다. 트랜잭션 한 개의 용량은 약 250바이트이기 때문에, 한 블록에 약 4,200건을 저장할 수 있다. 이 값에 생성 시간을 나누면, 4200건/600초 = 7 TPS 가 된다.
가장 널리 쓰이는 비자(Visa) 신용카드는 평균 2,000 TPS가 발생하며, 최대 5만 TPS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 전자 결제 플랫폼인 페이팔(Paypal)은 약 155 TPS다. 비트코인(7 TPS)은 페이팔보다 약 22배 느린 셈이다.
2세대 블록체인, 3세대 블록체인이라고 불리는 타 암호화폐의 TPS는 어느 정도 될까?
1세대 블록체인 비트코인은 앞서 말한 것처럼 7 TPS이며, 2세대 블록체인 이더리움(ETH)은 15~20 TPS 수준이다. 3세대 블록체인의 대표 주자인 이오스(EOS)는 3,000~4,000 TPS다.
세대가 바뀜에 따라 TPS는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도 라이트닝 네트워크나 플라즈마 같은 부가적인 기술들을 개발함으로써 느린 TPS를 보완하려 노력 중이다.
TPS만 높다고 좋은 블록체인일까?
‘탈중앙화 TPS’ 개념의 등장
최근 여러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TPS가 10만, 100만도 나오는 플랫폼들이 있다. TPS가 높으면 결제 이외에도 다양한 데이터들이 빠르게 처리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탈중앙화라는 퍼블릭 블록체인의 중요 요소를 간과하고 트랜잭션 속도를 높이는 것에만 집중한 프로젝트도 있다. 이 경우 퍼블릭 블록체인의 취지인 탈중앙화 속성이 훼손되기도 한다.
퍼블릭 블록체인(public blockchain)?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한 개방형 블록체인 네트워크. 비트코인, 이더리움, 비트코인캐시, 이오스 등 대부분의 암호화폐가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이다.
그래서 단순 TPS를 넘어서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이자 미국 블록체인 기업 컨센시스 창업자 조셉 루빈(Joseph Lubin)은 디코노미 2019 포럼에서 트랜잭션 처리 속도인 TPS 값에 탈중앙화 지수(DQ, Decentralization Quotient)를 곱해 나온 값인 ‘DTPS’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즉 DTPS는 탈중앙화 TPS다. 블록체인의 확장성을 논할 때 TPS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때 탈중앙화 요소가 간과되는 경우가 많아 DTPS 개념 도입이 제안된 것이다.
블록체인 TPS는 앞서 언급한 피겨스케이팅의 기술 점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에서 기술 점수 이외에도 예술 점수가 중요한 것처럼 블록체인에서도 TPS 외에 탈중앙지수가 중요하다. TPS를 높이는데 지나치게 집중하게 되면 블록체인 본연의 취지인 탈중앙화 요소가 약해져 해킹 및 노드 담합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피겨스케이팅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예술 점수 모두 높게 받아야 하는 것처럼 블록체인에서도 TPS(확장성) 뿐만 아니라 탈중앙지수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탈중앙지수(DQ, Decentralization Quotient)
탈중앙지수의 범위는 0에서 1까지다. 완전한 중앙화는 0, 완전한 탈중앙화는 1이다. 블록체인 탈중앙화 정도를 측정해 탈중앙지수를 산출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제안들(지니계수를 사용한 측정, 노드 집중도를 이용한 측정 등)이 있는데 아직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는 상태다.
하지만 탈중앙지수를 블록체인 평가 척도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은 블록체인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건전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메이저 블록체인의 탈중앙지수는 어느 수준일까. 조셉 루빈이 지니계수를 활용해 계산한 것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탈중앙지수는 0.8, 이더리움은 0.7, 라이트코인은 0.5, 트론은 0.3, 리플은 0.2, 이오스는 0.1이다.
이 값과 각 암호화폐의 TPS를 곱했을 때
비트코인의 DTPS는 0.8*7= 5.6
이더리움은 0.7*15= 10.5
라이트코인은 0.5*56= 28
리플은 0.2*1000= 200
트론은 0.3*1200= 360
이오스는 0.1*4000= 400
비자카드의 경우 철저한 중앙화 시스템에 의해 결제가 처리되기 때문에 TPS는 높지만 탈중앙지수가 0이어서 DTPS는 0이 된다.
특정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모든 노드를 프로젝트 팀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100만 TPS든 10만 TPS든 DTPS로 계산을 하게 되면 탈중앙지수가 0이므로 결국 0에 수렴하게 된다. 블록체인 사용 용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도로 중앙화된 블록체인 플랫폼은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사용하기 적합하지 않으며, 보안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
이슈 짚어보기: 페이스북 코인 중앙화 논란
페이스북이 2020년 발행 예정인 리브라 코인은 중앙화 논란에 휩싸여있다. 백서에 따르면 리브라 블록체인 출시 후 약 5년 동안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누구나 노드로 참여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과는 달리 노드가 되려면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즉 소수의 노드만 트랜잭션 검증에 참여할 수 있다. 노드의 2/3를 장악하면 리브라 네트워크 통제가 가능해 데이터를 위변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노드가 적으면 트랜잭션 처리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대신 중앙화 논란에 휩싸이기 쉽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확장성 기술을 추가하면 탈중앙지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TPS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이더리움의 경우 플라즈마(트랜잭션 결과만 메인체인에 전달해 처리 속도를 향상시키는 알고리즘) 등의 확장성 기술이 추가되면 비자 카드에 버금가는 45,000 DTPS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에 확장성 기술을 추가했을 때 DTPS는?
비트코인 = [0.8 * 7] + [0.8 * 300] = 245 DTPS
= [메인체인] + [라이트닝 네트워크]
이더리움 = [0.7 * 15] + [0.7 * 65,000] + [0.7 * 400] + [0.3 * 10] = 45,000 DTPS
= [메인체인] + [플라즈마] + [스테이트 채널] + [컨소시엄]
결론
정리하면 탈중앙화 지수가 낮을 경우(0에 가까울 때) 중앙화 우려가 있고, 이는 곧 퍼블릭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특성인 분산화를 저해해 보안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
높은 트랜잭션 속도에만 집중하면 블록체인 본연의 목적(탈중앙화)이 퇴색될 우려가 있으니 ‘예술 점수’에 속하는 탈중앙화 지수도 함께 고려해야 좋은 블록체인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처럼 분산성을 유지하면서 라이트닝이나 플라즈마 같은 확장성 기술을 통한 TPS 개선이 ‘블록체인 정신’에 더 부합하는 셈이다.
출처 : kr.coinn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