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세계문화유산
사관이 왕의 곁에
붙어 왕의 모든
언행을 기록하고
각지에서 발생한 일이나
정치적 사건등에 대해
빠짐없이 적어두지요.
이런 역사기록을
사초 [史草] 라고 해요.
그랬다가 왕이
승하하면 실록청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선왕대에 기록한 모든
사초를 모아 엮습니다.
몇년이 걸리는 방대한
작업이자 왕도 사초를
들여다 볼수 없는
엄중한 작업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한 왕의 실록이 완성되면
이를 한양의 춘추관과
전국 3군데에 더 나눠
보관했어요.
필사본으로 모사하고
종이로 싼뒤 방충제와함께 나무궤짝에 넣었지요.
경상도 성주
충청도 충주
전라도 전주.
춘추관과 합쳐 이를
4대 사고라고 합니다.
그렇게 13대 명종때 까지
보관해오다
14대 선조 때
1592년 임진왜란으로
왜군 만행에 불타버립니다.
그때 전주 사고 하나만
살아남아요.
전주지역 선비들이
힘을 모아 안전 장소로
옮긴 덕분이고요.
이순신 장군이 해전승리로
왜군이 전라도 지역을
유린하지 못한 덕도
입었지요.
왜란이 끝난 후
조정은 전주사고 실록을
재제작해
서울 춘추관을 비롯해
전국 5군데로
나눠 보관했어요.
이를 5대 사고라고
말하지요.
이번에는 전란의
교훈을 얻어
바다건너 강화도
묘향산(훗날 적성산)
태백산
오대산
이렇게 오지에
보관합니다.
조선시대가 끝나고
일제시대 총독부ㅡ
경성제대ㅡ서울대 규장각으로
전해져 오늘에 이릅니다.
그리고 한문으로된
실록을 한글로 완전 번역하고
전산화도 마쳐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한글을 알면
인터넷을 통해
볼수 있는 세상이 됐지요.
요약
일본이 임진왜란때 조선왕조실록이 불타 없어질뻔했는데
여러군데 분산저장된 데이터를 소멸시키는중
엄청난 해쉬파워를 가진 이순신장군을 띄어넘지 못해 해킹실패
오늘날 우리에게 이어져 온것
세계문화유산
사관이 왕의 곁에
붙어 왕의 모든
언행을 기록하고
각지에서 발생한 일이나
정치적 사건등에 대해
빠짐없이 적어두지요.
이런 역사기록을
사초 [史草] 라고 해요.
그랬다가 왕이
승하하면 실록청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선왕대에 기록한 모든
사초를 모아 엮습니다.
몇년이 걸리는 방대한
작업이자 왕도 사초를
들여다 볼수 없는
엄중한 작업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한 왕의 실록이 완성되면
이를 한양의 춘추관과
전국 3군데에 더 나눠
보관했어요.
필사본으로 모사하고
종이로 싼뒤 방충제와함께 나무궤짝에 넣었지요.
경상도 성주
충청도 충주
전라도 전주.
춘추관과 합쳐 이를
4대 사고라고 합니다.
그렇게 13대 명종때 까지
보관해오다
14대 선조 때
1592년 임진왜란으로
왜군 만행에 불타버립니다.
그때 전주 사고 하나만
살아남아요.
전주지역 선비들이
힘을 모아 안전 장소로
옮긴 덕분이고요.
이순신 장군이 해전승리로
왜군이 전라도 지역을
유린하지 못한 덕도
입었지요.
왜란이 끝난 후
조정은 전주사고 실록을
재제작해
서울 춘추관을 비롯해
전국 5군데로
나눠 보관했어요.
이를 5대 사고라고
말하지요.
이번에는 전란의
교훈을 얻어
바다건너 강화도
묘향산(훗날 적성산)
태백산
오대산
이렇게 오지에
보관합니다.
조선시대가 끝나고
일제시대 총독부ㅡ
경성제대ㅡ서울대 규장각으로
전해져 오늘에 이릅니다.
그리고 한문으로된
실록을 한글로 완전 번역하고
전산화도 마쳐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한글을 알면
인터넷을 통해
볼수 있는 세상이 됐지요.
요약
일본이 임진왜란때 조선왕조실록이 불타 없어질뻔했는데
여러군데 분산저장된 데이터를 소멸시키는중
엄청난 해쉬파워를 가진 이순신장군을 띄어넘지 못해 해킹실패
오늘날 우리에게 이어져 온것
역시 우리 선조들의 지혜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