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도 미국과 중국이 각각 상징하는 이념전쟁과 같은 측면이 있지만 각자의 국익을 위해 그리고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경제적 패권전쟁으로 보는 것이 맞다. 이 양 강대국의 패권전쟁 속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암호화폐이다.
최근 중국은 세계최초의 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즉 중앙은행의 디지털통화 발행을 추진을 공식화 하였다. 중국의 규제당국이 암호화폐 초창기에 지속적으로 자국 시장에 대한 재제를 가한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CBDC를 중국 정부 소유 4 개의 상업은행과 알리바바, 텐센트, 유니온페이 등 인터넷 기업을 통해 유통할 계획이라고 하며, 추후에 해외 송금과 결제 서비스로 용도를 확대하여 CBDC를 통해 위안화의 국제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CBDC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위안화의 기축통화화를 암호화폐를 통해 우회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온다.현재 암호화폐 시장은 중국이 미국보다 더 큰 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어 중국 당국은 이 시장 지배력를 바탕으로 CBDC라는 글로벌 기축 암호화폐를 발행하여,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위안화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지난 10 월 24 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중앙위원회 18 차 집체학습에서 “블록체인 기술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투자를 늘리고 힘을 쏟아 산업 부문에서 혁신을 이뤄야 한다.”라는 이른바 ‘블록체인 굴기’ 발언을 하며 중국의 미래산업으로 블록체인 지목하며 블록체인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의중을 강하게 밝힌다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지금 당장 일방적으로 완화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블록체인을 육성하려고 하는 의지를 강하게 내보였지만 기존의 암호화폐 시장을 투기의 장으로 만들지는 않겠다는 의도 역시 확고해 보인다.
중국의 ‘블록체인 굴기’ 선언의 진짜 목적은 무엇이라고 봐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기축통화의 문제와 미국과의 무역전쟁이라는 배경을 통해 봐야 할 것 같다. 중국은 현재 새롭게 부상한 글로벌 2 인자이다. 그리고 시진핑은 ‘중국몽(中國夢)’이라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미국을 뛰어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중국몽’을 이루기 위해 미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의 약점이 아직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기축통화의 문제이다. 2019 년 3 분기 기준으로 현재 전 세계 국가의 외환보유고 중 미국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61.6%임에 반해 위안화는 불과 2%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과 약 30 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수치이다.
2019년 9월17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자료(‘2019년 BIS 주관 전세계 외환 및 장외파생상품 시장 조사-거래금액 부문-결과’)에 따르면, 외환시장 거래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88.3%로 3년전보다 그 비중이 더욱 커졌으며 위안화는 달러, 유로화, 파운드화, 호주달러화 엔화 등 5대 주요통화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전체8위로 4.3%의 비중만을 기록했다. (*외환거래는 양방향 거래 통화합산으로 비중합계는 200%.)
2013년, BIS주관 전세계 외환 및 장외파생상품 시장 조사-거래금액 부문-결과에서 처음으로 10대 거래통화가 된 이후, 2016년 위안화는 IMF 특별인출권의 통화바스켓을 구성하는 5개 기축통화의 하나로 지정되며, 중국 경제권의 성장과 함께 순조롭게 영향력을 키워 왔다. 그러나 중국 경제 성장의 둔화와 함께 위안화의 영향력 성장세는 정체되기 시작했다. 2019년 중국 위안화는 아직도 스위스 프랑, 캐나다 달러보다도 낮은 수준의 외환시장 거래량을 보이고 있어,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위안화의 기축통화화는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본격화된 미중 양국의 무역분쟁의 영향과 함께, 위안화의 기축통화화의 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중국은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화폐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 반영하듯 미중 무역분쟁이 한참이던 10월, 중국은 최근 ‘블록체인 굴기’ 선언과 함께 발빠르게 암호화폐 관련 법안을 오는 2020 년 1 월 1 일부터 실행하기로 결정하며, 블록체인 산업 개발과 CBDC 발행을 통해 글로벌 디지털화폐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의도를 강하게 내보였다.
한편, 미국 정부는 중국처럼 중앙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규제를 진행하지 않고 있지만, 주요기업들의 암호화폐 발행에 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개발하고 있는 리브라(Libra)는 미국 정책 당국과 의회로부터 강한 제재를 받고 있으며 실제 발행은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이다.
이에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는 “미국이 토론하고 있는 동안 세계의 다른 국가들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 ”중국은 몇 달 안에 비슷한 아이디어를 실제 출시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라고 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같이 오히려 자본주의의 선두주자인 미국이 정부의 보수적인 접근으로 암호화폐 시장의 성장을 자국내에서는 제한하고 있지만 2020년에 중국 발행하게 될 CBDC에 대응하여 현재와는 다른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도 가능하다.
현재 강력한 글로벌 기축통화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암호화폐로 인해 기존의 기축통화 질서가 무너지거나 영향을 받는 것이 내키지 않겠지만, 중국에 의해 이 질서에 일정한 영향과 균열이 발생한다면 나름대로 대응책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미중의 무역분쟁, 혹은 패권전쟁에서 미국에 중국에 비해 현저한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달러라는 기축통화와 이로 구성된 달러중심의 글로벌 금융질서가 있다. 이 달러중심 금융질서를 중국이 CBDC를 통해 약화시키려 한다면 미국 역시 이 시장을 순순히 넘겨줄 수는 없을 것이다. CBDC와 같은 중앙은행이 직접 관여하는 암호화폐를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민간의 영역에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만 할 것이다.
어떠한 분야라도 라이벌이 있고 경쟁자가 있으면 그 시장은 빠르게 커갈 수 있다. 더욱이 G2 인 중국과 미국의 암호화폐 시장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면 이 시장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전통적 금융질서를 상징하는 ‘주식시장’ 도 몇 세기를 걸쳐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듯, 암호화폐의 시장도 안정적으로 정착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이 양 강대국의 경쟁이 본격화된다면 그 시간을 현저하게 단축시켜 줄 지도 모른다.
중국의 CBDC와 미국의 리브라(Libra)가 촉발하는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의 주도권 경쟁은 미중의 패권경쟁의 소모품으로 머물 것인가 ,양국의 경쟁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것인가 주목해 볼 가치가 있다.
출처:https://kr.thenodist.com/articles/45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