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가-테러와 프랑스의 무슬림-테러, 두 사건의 공통점:
서구 자본주의·제국주의와 세계 노동자·민중의 폭력적 대립
(1)
작년 12월, 미국 경찰의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 살해와 대배심의 무죄평결로 빚어진 흑인들과 양심적 시민들의 항의는 단순한 인종차별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에는 분명히 아직도 흑백 간의 심각한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사회·경제 차원에서도 존재하고 국가·정치 차원에서도 존재한다. 빈곤층 비율은 백인 10%, 흑인 28%다. 미국에서는 ‘인종 프로파일링’(피부색이나 인종을 토대로 용의자를 특정하는 수사 기법)이라고 하여 경찰이 검문·검색을 할 때 흑인은 우선적 대상이 된다. 2013년 한해 미국 전역에서 범죄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68.9%가 백인이고 흑인은 28.3%였다. 2010년 인구센서스 기준으로 미국 내 백인과 흑인의 비율은 72.4%, 12.6%인데 그러했다.
그러나 이 지점만을 가지고 최근의 경찰의 흑인 총격 살해를 다 설명 할 수 없다. 미국에서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살해되는 시민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지 줄어들고 있는지, 시민에 대한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고 있는지 완화되고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시민의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2013년 458명이라고 한다.) 늘어나 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근거는 이렇다. 미국 경찰의 특수기동대 규모는 1980년 3천 명이었으나 지금은 5만 명이다! 그리고 경찰은 갈수록 장비를 확충해 군대를 방불케 하는 중무장을 하고 전쟁하듯이 범죄자를 대하고 있다. 실제로 뉴욕 시장들은 9.11 후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런 ‘전쟁’이 전개되어 왔다면, 그 과정에서 시민에 대한 경찰의 단속도 강화되었을 것이며, 단속 과정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도 매우 심하게 행해져 왔을 것이다. 예를 들어 뉴욕시의 경우 2002년만 해도 10만 건이 채 되지 않던 불심검문은 2011년 68만5천 건으로 폭증했다. 그리고 거리를 지나가다가 불심검문을 당한 시민들의 90%가 흑인 또는 히스패닉이었다. 그리고 그런 강도 높은 단속과정에서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는 시민의 수도 늘어났을 것이며, 흑인 사망자도 절대적·상대적으로 더 늘어났을 것이다. 1992년~2012년 사이에 경찰의 이른바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이 강력범죄 1만 건 당 1.92건에서 3.38건으로 증가했다는 보도(<워싱턴 포스트>)는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찰 총격에 의한 흑인 사망과 흑인들의 항의행동을 단순한 흑백 인종차별 현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다. 인종차별 현상만 하더라도 그런 인간차별이 왜 생겨났고, 왜 지속되고 있는지 구조적이고 역사적으로 원인을 살펴봐야 할 것이며, 동시에 이런 인간차별이 왜 지금 더 악화되고 있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과 관련해서는 바로 위에서 뉴욕시의 경우에 대해 봤듯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강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계급을 위시한 시민 일반에 대한 억압이 전반적으로 강화되는 속에서 흑인에 대한 억압도 강화되고 있고, 또 더욱 차별적으로 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9·11테러직후부터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제한하고 법원의 영장 없이 시민을 감청·구금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특별법인 애국법을 운영해 왔다. 또 2003년에는 유색인의 테러를 방지한다는 구실로 국가테러를 실행하는 국토안보부가 만들어져 있다. 이 부서의 신설과 경찰의 중무장화가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발효된, 이란과 북한에 대비한 국방수권법에도 ‘무기한 감금 및 고문 조항’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면 미국사회는 왜 21세기에 들어 이처럼 더욱 억압적으로 되고, 유색인종을 위시한 시민에 대해 국가테러를 일삼는 테러국가로 흘러가고 있는가? 이 문제는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지배체제 및 그 위기와 연관시켜 살펴봐야만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그 원인이 합리적으로 해명될 것이며, 또 합리적으로 대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2)
프랑스의 무슬림 주민에 대한 인종차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이들은 북미 노예처럼 인신적 노예로 프랑스에 잡혀온 것은 아니지만 알제리를 비롯하여 북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에서 노예상태로 살던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주해 왔다. 지금의 무슬림들은 그 후손들이다. 일본에 건너가 사는 우리 교포 2~3세들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어쩔 수 없이 식민지를 형식상 독립시킨 이후에도 옛 식민지 나라들을 신 식민지로 지배해 왔고,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는 필요에서 그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여 왔다. 74년 이후 공식적으로는 이민금지정책을 펴고 있으나 프랑스 시민권 없는 사람들이 다수 프랑스에 이주해 살고 있다. 이들은 불법이민자로 규정되어 단속에 걸리면 강제로 추방된다. 이런 부분을 포함해서 프랑스에는 무슬림 이주민이 5~6백만 명으로서 총인구의 10%가 넘는다. 그 대부분은 북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대개 종교적으로 이슬람을 믿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단순 노동에 종사하거나 산업예비군으로서 존재한다. 산업예비군의 경우에도 유동적 과잉인구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많은 수가 불완전고용 상태에 있거나 장기 실업자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로 존재한다. 이들의 처지는 자본축적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고용의 기회가 늘어나고 생산성 향상의 성과물의 일부가 노동계급에게 분배될 때에는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할 만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생계유지 자체가 어려워진다. 더구나 그런 상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어려움은 가중된다. 지금 프랑스의 실업률은 10%에 달하는데, 무슬림 젊은이들의 실업률은 25%다. 대졸자의 실업률은 5%이지만 무슬림계 대졸자의 실업률은 25%에 달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노동계급 안에서도 차별받는 최하층을 이루고 있다. 룸펜프롤레타리아트는 범죄에 빠져들기 쉽다. 교도소 내 수감자의 절반 이상이 무슬림이다. 일설에는 70%라고 한다. 미국에서 흑인이 받고 있는 차별과 별 차이가 없다.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1970년대 이후 사라지고 있었고, 특히 2008년 미국발 금융공황 이후에는 확실하게 사라졌다. 계급적 모순이 심화되었고 계급투쟁이 격화되었다. 1994년 정월 초하루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는 날 터져나온 멕시코 치아파스주(州) 사파티스타의 반란과 1996~7년 2달간 전개된 한국의 노동법 개악 분쇄 총파업과 함께, 1995년 알랭 쥐페 수상의 연금개악 기도를 분쇄했던 5주간의 공공부문 파업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그 이후에도 프랑스에서는 2003년 연금개혁과 교육개혁에 반대하는 파업과 시위, 2006년 비정규법인 최초고용계약법을 철회시킨 수백 만 명의 노학 연대투쟁 등 신자유주의 의제를 둘러싸고 대규모 파업이 전개되었다. 2008년 금융공황 이후 계급간 대결은 더욱 치열해졌다. 2010년에는 사르코지 정부의 연금개악 기도에 반대하여 3백만 명 규모의 파업과 시위가 두 달에 걸쳐 여러 차례 계속되었다.
이렇게 계급투쟁이 격화되는 시기에 프랑스 독점자본은 계급투쟁을 왜곡시키기 위한 마녀사냥이 필요해졌고 무슬림 이주민들을 주된 희생양으로 삼았다. 2004년 초중고 공립학교에서 몸을 가리는 히잡을 입지 못하게 했다. 2011년 사르코지 정권은,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이 전신을 가리고 눈 부분만 드러낸 복장인 부르카와 니캅 착용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소수자/외부자에 대한 이런 공격은 집시에 대해서도 가해졌지만 집중점은 무슬림이었다. 언론에서 이슬람을 모욕하고 조롱하거나 무슬림(이주민의 대부분이 무슬림이다)을 배척하는 인종차별적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슬람 사원에 대한 극우세력의 공격도 빈번해졌다.
그리고 이때는 또한 1970년대 자원파동 이후 힘을 키워온 자원민족주의에 대한 반격으로서 이란(호메이니)·이라크(후세인)·리비아(카다피) 등 중동·북아프리카지역의 반제 민족주의 정권들(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이슬람을 정치이념화 하고 있었다)에 대한 악마화가 필요한 때이기도 했다. 2005년 덴마크 일간 <율란츠-포스텐>은 이슬람 선지자 무하마드가 머리에 폭탄 모양의 터번을 두른 모습 등을 묘사한 12편의 만평을 실었다. 이 만평은 이슬람권의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이듬해인 2006년 프랑스의 주간 <샤를리 에브도>는 문제의 만평을 재게재하면서 “멍청이들한테 사랑받자니 고역이네”라고 말하는 만평을 추가해 이슬람권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해 5월 <샤를리 에브도>는 대표 필립의 발의로 ‘12인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이슬람주의가 종교적 전체주의로서 나치즘이나 파시즘처럼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규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우파 정권의 문화부 장관은 언론만평을 기념하는 파티를 열고 그 자리에 <샤를리 에브도>의 작가와 필진을 초대해 그들을 옹호했다. <샤를리 에브도>는 2011년에도 ‘샤리아 에브도’라는 특별판을 발행하고 또다시 무하마드가 등장하는 만평을 실었다. 무슬림들은 분노했고, 이들의 공격으로 이 신문사 사무실은 잿더미로 변했다.
언론과 정권 등 우익세력의 이런 반(反) 이슬람, 반(反) 무슬림, 반(反) 이주민 선동에 힘입어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이 지지를 늘려갔다.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은 2002년 대선에서 사회당의 조스팽을 제치고 결선에 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편견·차별·빈곤으로 무슬림이 주로 거주하는 대도시 교외는 게토화 되었다. 이런 현실에 무슬림 청년들은 절망했고, 좌절하고 분노한 이 청년들의 사소한 일탈에도 경찰은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마침내 2005년에는 파리 교외 클리시-수-부아 지역에서 무슬림 청년들이 경찰폭력에 저항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당시 내무장관 사르코지는 3주간에 걸친 이 폭동을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무자비하게 진압했으며, 그 공로(?)로 2007년에 대통령이 되었다. 이런 폭동은 규모는 작지만 이후 다른 무슬림 밀집지역에서도 일어났다.
이처럼 이번 무슬림 청년들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은 일회적·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사회적·역사적 과정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필연적 사건이다.
(3)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은 서구 제국주의가 한편으로는 북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 노동력을 수입하여 초과착취하던 과정에서 축적된 모순의 분출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중동의 석유자원을 장악하기 위해 침략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슬람을 모욕하고 무슬림을 악마화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모순이 분출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테러사태를 접하면서 사람들은 중동지역의 테러리스트들과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과 연관시켜 생각하지 말고 순전히 프랑스 국내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물을 연관시키지 말고 분리시켜 생각하는 형이상학적 사고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은 지배계급 이익에 부합한다.
프랑스 테러사건은 직접적으로는 프랑스의 국내 문제가 맞지만, 그 테러범들이 옛 식민지이고 지금의 신식민지·종속국인 나라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빼놓고 그야말로 순수하게 프랑스 국내 문제라고 할 수 없다. 프랑스의 무슬림 주민 문제는 프랑스 제국주의와 식민지·종속국 간의 지배·수탈 문제와 자본과 노동 간의 지배·착취 문제가 중첩된 문제다. 나아가 이 문제는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을 재식민화하려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 침략 및 지배와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저항하고 있는 이 지역 민중 간의 갈등과도 중첩되어 있는 문제다. 비록 무슬림의 인종적·민족적 저항운동이 이념적·정치적으로 전근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문제는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러면 전근대적이면 계몽을 위해 외세가 침략·지배해도 좋은가? 그렇게 강제로 계몽하면 인간적 해방이 오는가? 아니다. 온정주의적인 전근대적 지배·착취 대신에 피도 눈물도 없는 근대적이라는 자본주의적 지배·착취가 오고, 그것과 겹쳐서 식민제국과 식민지·종속국 간의 인종적·민족적 지배·수탈이 이중적으로 강요된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경험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번 프랑스 테러사건은, “테러는 악”이라는 명제도 맞고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는 명제도 맞지만, 그런 추상적 명제들로써 언론에 대한 무슬림 테러를 극악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나는 샤를리다”는 구호를 외친다고해서, 답이 도출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언론의 전임 편집장은 시오니즘 성향에 기울고 이슬람교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잡지를 이끌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고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 “모독과 조롱 또한 문화적 폭력이다”라는 대항 명제를 내세우고,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는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런 어정쩡한 접근방식으로는 어정쩡한 절충밖에 내올 수 없다. 그런 수준을 넘어서 서구 자본주의·제국주의 지배체제의 이슬람에 대한 입체적 공격과 이에 대한 서구 및 비서구 무슬림들의 저항적 테러가 충돌하게 된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살펴서 그 원인의 뿌리를 밝혀내야만 제대로 된 진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과학적 진단에 의거해서만 유효한 문제해결 방법이 도출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21세기에도 세상의 움직임을 규정하고 있는 자본에 의한 노동지배와 백인 제국들에 의한 유색민족들의 지배가 사라지지 않고는 <샤를리 에브도> 사건과 같은 계급적·인종적 충돌과 참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갈수록 더욱 빈발할 것이다.
*이택광이 만난 알랭 바디우(<한겨레> 2015.1.21.)에게는 프랑스 제국주의의의 과거 침략과 지배에 대한 인식은 있으나 현재의 침략과 지배에 대한 인식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침략과 지배가 민족적이면서 동시에 인종적이라는 것도 역시 잘 보이지 않는다. 이택광은 “프랑스에서 계급갈등 문제는 제국주의의 역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이주민들의 대부분이 하층계급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계급갈등이 종교의 외피를 쓰고 있는 까닭은 가난한 이주민들 대다수가 이슬람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이슬람과 기도교의 문명충돌론 따위로 단순하게 환원시킨다면, 프랑스 내부에서 발생한 범죄를 외부 탓으로 돌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고 비슷한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그러나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민족적·인종적 침략 및 지배와 그에 대한 저항이라는 모순에 대해 눈감고서 오늘의 세상사를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