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은퇴한 앤서니 디 이오리오(Anthony Di Iorio)
비탈릭과 마찬가지로 앤서니 디 이오리오 역시 캐나다 토론토 출신이다. 그는 마케팅과 벤처 캐피탈에 손을 댄 다양한 비즈니스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또한 캐나다 비트코인 얼라이언스의 집행이사로 토론토에서 첫 번째 비트코인 써밋(Bitcoin Summit)을 조직했다. 2012년 11월에 열린 비트코인 모임에서 그는 비탈릭을 만났다.
그와 공동 설립자 조셉 루빈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 역시 부자 아빠를 둔 2세였던 것. 그는 2013년 말 투자에 참여하고 이더리움을 공동 설립했다. 무엇을 담당했는지에 대한 상세 정보는 없다. 그러나 그가 이더리움에 참여한 것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조셉 루빈처럼 이더리움의 비영리 운영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더리움이 비영리 운영 방식을 확립한 뒤 디 이오리오는 이더리움을 떠나 토론토 증권거래소의 최고 디지털 책임자로 잠시 재직했다.
돈이 많은 것의 최대 장점은 자유이고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16년에 증권거래소를 떠나 디센트럴(Decentral)을 설립하고 디지털 지갑 Jaxx를 개발했다. 이 지갑은 2018년 5월 처음 출시되었다.
같은 해 디 이오리오는 포브스 잡지가 선정한 암호화폐 상위 20인에 올랐고 순자산은 7억 5천만 달러에서 10억 달러로 추산됐다.
그러나 2021년 여름, 앤서니 디 이오리오는 개인 사정으로 암호화폐 업계를 떠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자신의 블록체인 회사인 디센트럴(Decentral Inc)를 ‘수 억 달러’에 매각할 계획을 밝혔다.
그가 얼마나 많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는지는 공개된 바 없다. 그는 참여중인 다른 스타트업과의 관계도 끊고 더 이상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그는 자선 사업과 다양한 분야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6. 투자자 아미르 체트잇(Amir Chetrit)
아미르는 이스라엘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전문가지만 부동산 개발에서 목돈을 챙겼다. 그는 2008년 학교를 중퇴하고 금융 위기로 전통 금융시스템이 망가기지 시작했을 때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아미르는 2013년 9월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비트코인 행사에서 비탈릭을 만났다. 당시 그는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자산 관리를 목표로 하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컬러드 코인스(Colored Coins)와 협력하고 있었다. 비탈릭도 이더리움을 제안하기 전에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2013년 12월, 아미르는 비탈릭의 초대를 받아 이더리움 창립에 참여했다.
그는 애당초 부동산과 투자에 종사해왔기 때문에 기술이나 이더리움의 비전 자체에는 충분히 열의가 없을 수 있었고 그가 어떤 업무를 담당했는지도 별로 소개된 게 없다.
2014년 6월 공동 창립자 회의에서 아미르는 이더리움 개발자와 다른 공동 창립자들로부터 이더리움에 대한 헌신 부족으로 비난을 받았고 사임을 결정했다. 그는 현재 다른 일을 하고 있다.
7. 집으로 돌아간 아빠 제프리 빌케(Jeffrey Wilcke)
또 다른 개발자인 제프리 빌케(Jeffrey Wilcke)는 네덜란드 1호 ICO인 마스터코인(Mastercoin)을 작업할 때 이더리움을 접했고, 그때부터 관심이 많아 조용히 구글의 Go 언어로 구현 페이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2014년 초 그는 개빈 우드와 함께 창립자 명단에 합류했다.
빌케의 소프트웨어 페이지 구축 여정은 Go Ethereum 또는 줄여서 ‘Geth’라고 한다. 그는 이더리움의 초기 개발에서 중요한 개발자라고 할 수 있는데, 개빈 우드가 C++로 이더리움을 구현했을 때 빌케는 프로그래밍 언어 고랭(golang)으로 이더리움을 구현했다.
그러나 이더리움 하드 포크, 일련의 해킹, 그리고 그의 아들이 태어난 뒤 빌케는 Geth의 감독 권한을 그의 핵심 협력자 피터 실라기(Peter Szilagyi)에게 넘겼다. 그는 현재 형 조에(Joey)와 함께 게임 개발 스튜디오인 그리드 게임스(Grid Games)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회사의 개발자 모집을 돕기 위해 ETH를 일부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