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원고는 중앙일보 조인디에 제출한 원문으로, 최종본은 데스크의 편집을 거쳐 https://joind.io/market/id/1581 에 게재되었습니다.
바이러스의 공포와 생명의 위협 앞에서 모든 것이 멈춰 섰습니다.
불교는 1600년 만에 모든 법회를 중지하고 천주교가 236년 역사상 첫 미사를 중단하였으며 상당수의 개신교회에서도 온라인 예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적당한 위험 앞에서는 주가 지수와 비트코인 가격은 역(逆)의 상관 관계를 보일 때가 많았지만, 생명의 위협 앞에서는 주가 지수와 비트코인 가격 모두 내려가고 있습니다.
전국 학교들이 개학과 개강을 연기했고 일본은 아예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사회 전 분야에서 고통스러운 낯선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등 상당수의 IT기업들이 재택 근무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올해 경영 예상 실적을 하향 조정하고 있고 조금 더 지속되면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국의 자영업자들은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소상공인 연합회 설문조사에 의하면 코로나19 사태 후 매출이 감소했다는 응답 비율이 97.6%에 달했고, 방문객 감소 비율에서도 ‘50% 이상 감소’가 가장 많았습니다. 건물주의 임대료 인하 뉴스가 나오고 있지만 1분기를 넘어 2분기까지 이어진다면 줄줄이 폐업을 선택하는 자영업자들이 쏟아질 것입니다.
한편 갑자기 찾아온 위기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공개합니다. 재택근무 경영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기업들은 비대면 상태에서의 업무 관리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얼굴 보고 회의하는 것이 편하고 직원이 책상에 앉아 있어야 근무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익숙한 경영자와 관리자들에게 재택근무는 정서적으로 낯설게 다가옵니다. 평생 처음으로 ‘온라인 강의’를 찍어본다는 교수들의 고백도 이어집니다. 중앙일보 기사에 의하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택시 승객이 크게 줄었는데 사납금은 그대로 내야 하는 택시 기사들의 고충도 나옵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18464 )
고통스럽지만 대한민국은 디지털 대전환을 맞고 있습니다. 손 소독제가 품귀 상태이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아직도 주민센터에서 인감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의무적으로 엄지손가락을 단말기에 접촉해야 합니다. 편의점에 근무하는 직원은 신원을 모르는 손님들로부터 하루에 수 백장의 신용카드를 건네 받아야 합니다. 지폐의 위생상태는 더욱 심각합니다. 한국은행의 ‘2019년 은행권 유통수명 추정 결과’에 따르면 5만권의 유통수명은 13년 5개월에 달합니다. 1만 원 권은 10년 7개월, 5천 원 권은 4년 1개월, 천 원권은 4년 5개월로 금액이 작을수록 수명이 짧지만 그 동안 도대체 몇 만 명의 손을 거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DID와 디지털 화폐는 앞으로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토론되어야 합니다. 온라인 교육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한국의 대학 교육은 온라인 강의 비율이 20%를 넘을 수 없었습니다. 미네르바 스쿨을 세계적인 교육 혁신의 사례로 꼽으면서도 국내 대학은 온라인 강의가 전체 강의 중 20%를 넘을 수 없는 교육부 규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국가적 민낯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것은 믿기 어렵고 눈에 보여야 믿을 수 있다’는 무의식과 습관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 중심의 사고 체계 상에서는 직원이 자리에 없으면 불안하고, 온라인 교육의 비율이 높으면 교육의 품질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있으면 창의적인 관점으로 불안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했는데, 현실에서는 규제와 습관이 훨씬 편한 방법이었습니다. 워렌버핏은 2001년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It's only when the tide goes out that you discover who's been swimming naked.)
국가가 나서서 부랴부랴 마스크를 대량으로 풀었지만 전국에서 이어지는 헛걸음과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긴 줄을 서 있는 국민들의 모습은 한국 행정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물류 산업에서는 새벽배송의 개념까지 자리잡은 시대에 마스크를 집으로 배송해 주거나 주민센터에서 신분증 확인 후 적정수량을 나누어 주면 될 텐데, 아직 한국 행정의 사고력 수준이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 중증장애인 등 취약계층은 더욱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IT 강국이라 말하기가 부끄럽습니다. IT 강국은 기술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 체계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ZOOM과 같은 원격근무 솔루션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고 온라인 기업들의 트래픽이 오르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기에는 국민들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그 어떤 것도 사람들의 생명의 가치와 바꿀 수 없습니다.
생명의 위협은 리더십에도 큰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촘촘히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 속에서 작은 변화는 삽시간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과 중동에 급격히 퍼진 배경에서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의 네트워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복잡계 이론(complexity theory)은 네트워크 환경에서 리더십이 가져야 할 관점을 제공해 줍니다. 국정관리연구저널에 실린 ‘네트워크 거버넌스와 정부의 역할(2011, 이명석)’ 논문에 따르면 복잡계 환경 속에서 중앙적, 수직적 리더십은 한계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네트워크와 복잡계 환경 속에서 선형적 구조의 리더십은 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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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에서 관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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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에서 귀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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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에서 객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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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침에서 데이터 기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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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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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준비에서 재빠른 실시간 대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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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한 지시에서 불편한 오버 커뮤니케이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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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지켜보는 것에서 상황을 예측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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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된 빙하 크기의 숫자에 빠지지 않고, 수면 아래의 거대한 빙하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위기 상황에서 리더의 과감한 결단과 선제적 조치가 필요한 이유는 작은 신호는 훨씬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을 끓이면 처음에는 작은 방울들이 올라오지만 이내 확 끓어오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서 변화의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파산했소?”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 (gradually, then suddenly)
김문수 aSSIST-장강상학원 Top-tier EMBA 및 크립토MBA 주임교수